채미정-서산서원-무기연당-창녕/관룡사
원북 벽화 골목길 입구
함안 채미정
서산서원 근처에 채미정이란 정자가 있었다.
서산서원과 관련된 생육신의 한사람인 어계 조려 선생이
고향에 내려와 여생을 보낸 정자라고 한다.
조선 단종 시 생육신의 한사람인 어계(漁溪) 조려(趙旅)가
단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 위를 차지한 세조의 처신에 격분하여
조정을 등지고 고향에 돌아와 여생을 보낸 정자이다.
1693년에 창건하였고 1954년에 재건(再建)하였다.
정면 4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으로서 백세청풍(百世淸風)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 정면에 방형 연못이 있고 북쪽절벽위에
청풍대(淸風臺)에 문풍루(聞風樓)라는 6각정이 있다
채미정은 옛 서산서원의 부속 정자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산서원이 훼철될 때도 남아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1954년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 조려에 대하여 *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 본관 함안(咸安). 자 주옹(主翁).
호 어계은자(漁溪隱者). 시호 정절(貞節). 1453년(단종 1) 진사가 되고
명망이 높았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항거하여
벼슬을 단념하고 함안에 돌아가 백이산(伯夷山) 아래에서
독서와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1698년(숙종 24) 단종의 왕위가 복위되자
이조참판에 추증되고, 정조 때에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703년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문집에 《어계집(漁溪集)》이 있다
채미정(采薇亭)이란 이름은 주나라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만 캐 먹으면서 살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합니다.
건물 처마 밑에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조려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 즉 그의 곧고
맑은 충정을 보는 듯합니다
함안 청풍대와 문풍루
채미정 바로 옆의 언덕 이름을 청풍대라고 하면
청풍대 위에는 문풍루라는 누각이 있다.
채미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채미정의 부속 누각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같다.
언덕위 누각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일품일 것이다.
충의공 대소헌 조종도 선생과 열녀 정부인
전의이씨의 쌍절각(雙節閣) 입니다
정절공은 어계선생의 후손으로 정유재란 때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고, 부인인 전의이씨도 이날 함께 자결하였어요.
서산서원
1706년(숙종 32) 지방유림의 공의로 생육신인 조려(趙旅)·
원호(元昊)·김시습(金時習)·이맹전(李孟專)·성담수(成聃壽)·
남효온(南孝溫)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13년에 ‘西山(서산)’이라고 사액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84년 정부의 보조와
유림의 협력으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3인의 충신에 대한 개개의 소개가 된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어요
. 모두들 어계선생의 후손들이지요.
함안조씨 십삼충 비석
숭의문(崇義門)은 서산서원 초입에 세워져 있는
외삼문(外三門)으로 서원의 주진입문예요
건물은 사당인 충의사(忠義祠), 강당인 숭의당(崇義堂),
동재인 양정당(養正堂), 서재인 상의재(尙義齋), 소청각(溯鶄閣),
전사청(典祀廳), 내삼문인 경앙문(景仰門),
외삼문인 숭의문(崇義門)이 있다.
서산 서원(西山 書院)은 1703년(숙종 29)에 창건 후,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다가 1984년에 복원하였다.
어계고택
어계고택은 어계 조려가 태어난 곳이라고 전하지만,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가 아닌
고택(故宅)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건물은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조려(趙旅, 1420~1489)는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린 뒤 고향 함안 군북에
낙향하여 은거하였습니다. 그는 단종이 세조로부터 사약을 받고 죽자
영월 청령포의 단종 빈소로 문상하러 갔으며, 그 뒤 단종의 넋을
공주 동학사(東鶴寺)에 모신 후 원북리 뒷산인 서산(西山) 아래에
은거하였습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서산을
백이산(伯夷山)이라 불렀습니다
어계고택 은행나무
수령: 500년.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3.4m.
소재지: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592
무기연당 주차장
무기연당은 국가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조선 후기 연못이다.
이곳은 현재 후손이 살고 있는 곳이니 주의해 주라는 글이 적혀있다.
무기리 는 마을 이름이고요.
#주씨 성을 가진 #오래된집 #고가 입니다.
이인좌의난 을 평정한 주재성 의 생가 이자
주씨의 종가 라는군요.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 966번지 내 위치한 주씨고가(周氏古家)는
1700년대에 건립된 국담(菊潭) 주재성(周宰成) 이래의 종택으로,
종택의 정문, 서실인 감은재(感恩齋), 영빈사(迎賓舍), 중문, 안채,
사당인 부조묘가 있고, 동쪽에 중요민속자료 제208호로 지정된
하환정(何換亭), 풍욕루(風浴樓), 국담(菊潭)이 있다.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함안일대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공을 세운 의병장 주재성(周宰成)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하환정(何換亭)과 풍욕루(風浴樓)입니다.
연당의 연못가에 하환정(何換亭)과 풍욕루(風浴摟)를 세웠고
충효사(忠孝祠)를 건립하였다. 하환정은 동쪽가에 있는데,
정면 2칸, 측면 2칸의 규모이고 연당 쪽으로 난간을 설치하였다.
마루가 고설되지 않은 것이어서 그저 사기(四起)하였을 정도이다
무기연당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의
유교적 우주관을 형상화 했다 한다. 네모난 연못 가운데
돌로 쌓은 인공섬이 있는 이 연못의 이름은 주재성의
호를 딴 '국담'이라고 한다
함안 무기연당 ('조선시대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는 곳')
무기연당이 있는 무기리 주씨고가는 영조 4년(1728)에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로가 있었던 국담 주재성
(菊潭 周宰成, 1681~1743)의생가이자 주씨의 종가이다.
주재성은 함안 출신의 유학자이자 의병장 이었다
창녕 관룡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라시대부터 있었다는 사찰로서 〈사기 寺記〉에 의하면
349년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전설에 의하면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100일기도를 드릴 때
오색채운이 영롱한 하늘을 향해 화왕산으로부터
9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은 관룡사,
산 이름은 구룡산이라 했다고 한다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준다는 관룡사
임진왜란 때 관룡사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사라지고 약사전만이
그 화를 면하여 기이하게 여긴 영운스님이 약사전을 살펴보았는데
들보 끝의 나무가 겹쳐진 곳에서 (영화 5년 기유 서기 349년)이라는
글자가 발견되어서 이때부터 관룡사에서 빌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설이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약사전입니다.
약사전은 조선 전기의 건물로 추정하며, 앞면 1칸 옆면 1칸의
매우 작은 법당으로 건물 안에는 모든 중생의 병을
고쳐 준다는 약사여래불을 모셔져 있습니다
대웅전입니다
조선 태종 원년에 창건하여 임진왜란 때 화재로
광해군 9년에 중창하였고 영조 25년에 중수하였으며,
중앙에 석가여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약사여래불
오른쪽에 아미타여래불을 모신 법당입니다.
관룡사는 신라 8대 사찰의 하나로 394년(내물왕 39)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고, 583년(진평왕 5) 증법스님이
중창하고 삼국통일 후 원효스님이 중국 승려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여 대도량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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